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명군이 되어보세!/개변된 역사/2부 (문단 편집) ==== 학문 ==== * '''[[아라비아 숫자|무종수]]''' 아라비아 숫자. 주인공이 저화 일련번호로 쓰기 시작한 아라비아 숫자는 2부 시점에서 무종수라는 별명을 얻는다. 상희가 수학강사 노릇을 시작하며 산관들은 한자 대신 무종수로 계산하기 시작한다. 한자를 모르는 백성들은 국문과 섞어서 무종수를 쓰고 있다. 이슬람권과 교류가 시작되면서 [[한국기원설|'100년이 지났다지만 회회인들에게까지 무종수가 퍼지다니 신기하다']]라는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어쩌면 한동안 무종수 한국기원설을 밀다가, 인도기원설이 입증된 후에는 15세기 사람인 [[표절|무종이 대체 어디서 인도 숫자를 봤을까]]가 미스터리가 될 듯 하다. * '''[[수학]]''' 과외 경험이 많아 고등학교 이과 수학 정도는 통달한 상희가 산관들에게 가르친다.[* 처음에는 여자에 후궁이라는 이유로 반발이 심했으나 주인공배 수학대결에서 상희는 산관들을 탈탈 털어버리며 실력을 입증한다. 과외에도 소질이 있었는지 역대 최악의 불수능으로 악명 높은 1997년 수능을 쳐도 5프로 안에 들 거라고 한다!] [[삼각함수]]·[[로가리듬|로그]]·[[미적분]] 등이 생겨 유럽 수학보다도 앞서 나가게 된다. 삼각함수는 [[피타고라스|이미 기원전부터 있던 개념]][* 재밌는 건 피타고라스 학파가 [[무리수]]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니 논외로 치고, 로그는 약 10년, 미적분은 약 80년 일찍 발견한 것.[* 뉴턴과 라이프니츠는 동방의 고급 수학으로 미적분을 배워서 발전시키게 될 것으로 보이며 만일 지식의 전달이 늦어 원역사처럼 원조논쟁이 벌어진다면 80년이나 앞선 원조를 놔두고 하는 특대형 뻘짓이 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정확한 지도를 제작하거나 렌즈를 제작하는 등 큰 도움이 된다. 왜란 후에는 과거 시험 정식 과목으로 채택할 계획이라고 한다. 실제로 산술은 사대부가 배워야 할 여섯 가지 교양[* 예의범절·음악·활쏘기·승마술 내지 마차몰기·서예·산술.]에도 들어가 있으니 명분도 충분할 거라고. 성균관을 종합대학화해 수학과를 만드는 것 외에도 수학교사 양성을 위한 전문학교도 만들 계획이다.[* 2부에서 상희의 환생체 이수현의 업적은 인류 최고의 여성 과학자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 정도다. 인류 최악의 전염병 중 하나인 천연두의 백신을 개발했고, 동양 의학을 집대성한 의서 편찬에 참가했으며, 유럽에서 수많은 수학자들이 수백 년에 걸쳐 이룬 업적을 혼자 해냈다. 그리고 이 모든 업적을 이뤘을 때 고작 10대 후반~20대 초반이었다.] 상희와 주인공 본인들이 보기에 더 편하기도 하고 장차 서양과 교류할 때 더 편할 것이라는 이유로 한자가 아닌 무종수(아라비아 숫자)로 계산하도록 하며 기호나 문자도 알파벳을 사용한다. 다만 이 시기에 서양과 최초로 접촉이 이루어진 만큼 후대에 어디서 갑자기 알파벳이 튀어나왔나 하는 것이 미스터리로 여겨지지는 않을 듯하다.[* 일상 언어에서는 사용되지 않는 문자라는 것은 수학기호로 사용될 최적의 조건이다.] 상희 왈, 십수년에 걸쳐 자신이 아는 현대 고등학교 수준의 수학은 죄다 가르쳤기에 [[인플레이션|다음 생에는 영재는 될 수 있어도 더 이상 수학천재 행세는 불가능해졌다고.]] * '''서양 철학''' 주인공이 세자의 사고를 넓혀줄 목적으로 선교사들에게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을 가르치도록 했다. 당연히 신하들은 반발했으나, 주인공이 "공맹과 동시대의 서양 현인들이었다."며 알려주는 한편, 정작 선교사들에게 서양 철학 강론을 듣고 나선 잠잠해졌다고. 주인공은 복잡한 철학 같은 거 모르겠다며 대충 넘어갔다.[* 사실 고작해야 1500년대 수준의 선교사 몇 명이 교양 수준으로 익혀 놓은 서양 철학을 성리학자들이 한 방에 받아들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그걸 세자에게 가르치겠다고 하고 동의할 가능성은 사실상 전무하다. 마테오 리치는 그리스어·라틴어·히브리어를 배우는 데 2년, 그리고 논리학, 윤리학, 형이상학을 3년 공부하는데 일단 플라톤은 잘 공부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3년 익힌 철학으로 조선의 성리학자들을 이겨내고 세자를 가르친다는 건 불가능하다. 아무리 이 세계의 조선이 개방적이래도 세자에게 가르칠 학문이라는 건 나라의 장래를 좌우할 중대사다. 그리고 어지간한 경제력 차이, 문화력 차이가 없는 이상 이질적인 사상은 그렇게 쉽게 전파될 수 없다. 불교가 중국 전파될 때까지 얼마나 고생했는지만 알아도 세자에게 한 방에 서양 철학을 가르치는 걸 조선인들이 받아들인다는 얘기는 못한다. 당장 플라톤 대표적인 대화편인 국가만 봐도 마지막은 천국을 방불케 하는 저승에 올라가서 얻을 영광과 함께 그리스 신들을 칭송하면서 끝난다. 게다가 혼의 윤회니 상기설이니 착하게 살면 신의 세상에서 태어나니 이딴 얘기도 한다. 이런 걸 보면 결국 불교가 온갖 잡신 섬기듯 얘네는 갖은 그리스 잡신 섬기는 거냐는 얘기가 안 나올 수 없다. 논리학도 이미 중국의 명가·묵가·일부 도가·순자 계열이 좀 파고들었지만 결국 주류 유교에게 백마가 말인지 아닌지 그 따위가 무슨 쓸모가 있냐고 논파당한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 형이상학의 경우 아예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거나 제 1실체가 현실에 있는지 그게 뭐가 중요한지 공감해 줄 가능성 자체가 없고 끽해야 그래서 제 1실체라고 할 수 있는 너네 신이 최고라는 거냐? 같은 반응이 나올 것이다. 그리고 윤리학은 에피쿠로스나 스토아 학파 위주인데 딱히 윤리학적인 측면에서 성리학을 넘어설 만한 구석이 없다. 현지 엘리트가 아니라 예수회 선교사 레벨이 고작해야 3년 공부로 조선 성리학자들과의 논쟁에서 이기기는 불가능하다. 다만 논쟁에서 이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우리 쪽 철학도 그쪽과 비슷한 구석이 있습니다.' 수준이라면 조선 성리학자들이 수긍하지 못할 것도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선교사들의 공부가 깊지 않다면 그 만큼 세자에게 가르칠 만한 것도 적기에 유학 공부에 방해될 것도 없을 테고.] * '''[[사전]] 편찬''' 맞춤법을 통일하기 위해 국어대사전 편찬을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 사전 편찬은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는 만큼 본격적인 작업은 왜란 이후 진행할 예정이지만 자료 수집은 미리 시작했다. 전가사변당했다가 돌아온 정철을 사전청 도제조로 임명하여 이 작업을 총괄시켰다. 국어사전 외에도 일본어사전·중국어사전·여진어사전·스페인어사전 등도 만든다. * '''서양 서적''' 세스페데스의 선교와 함께 성서가 조선에 유입되었고, 이항복은 라틴어 습득을 위해 갈리아 전기를 탐독하기도 했다. 권율은 사위에게 받은 플루타크 영웅전에 꽤 심취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여기에 1차 견서사가 4987권에 달하는 서양 서적을 가지고 왔다. 그 중 하나가 [[데카메론]].[* 내용을 본 사람들은 알지만 이거 [[야설]]이다. 잘 하면 조선의 출판업이 어둠의 루트로 탄력을 받을지도 모를 일. 실제 일본의 경우 에도 시대에 호색일대남(好色一代男)이라는 야설이 히트를 치면서 출판업이 엄청나게 발전했다. 한국도 2000년대 무렵에 초고속 인터넷과 IT 산업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인으로 'X양 비디오'를 꼽는다.] 정철이 사전청에서 번역을 시작했다. 성리학의 가르침에 반하는 잡서로 취급 받을 수도 있지만, 먼 나라의 풍습과 문화, 역사를 소개하고 있기에 호기심 있는 관료나 선비들에게 인기를 끌 듯하다.[* 실제 조선 후기에도 실학자들에 의해 중국에서 서양 서적 번역본들이 수입되었고, 궁궐의 서고에도 수 백 여권 비치 될 정도였다.] 정철은 리비우스가 쓴 '로마사'에 빠지는데, 주인공은 괜히 공화정 로마 시절을 파다가 조선에 공화주의 세력이 등장하지 않을까 걱정한다. 2차 견서사는 좀 더 체계적으로 베네치아 상인들의 도움으로 책을 사들이고 있으며 베네치아 상인들이 조선 서적을 구매하기 위해 조선으로 방문할 예정이다. 서양 서적들이 퍼지면서 조회에서 동양 고사만이 아닌 트로이 전쟁 등 서양 고사를 인용하는 일도 생기게 되었다. * '''[[양명학]]''' 조정에서 사림파들이 축출되고 관학파가 주류가 되자, 정권에서 소외된 지방 사림들 가운데 성리학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 양명학이나 서양의 학문을 익히는 사대부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영향으로 지방 서원들을 중심으로 양명학 관련 서적이 외국에서 다수 수입되고 있다. * '''[[금석문]]''' 명나라와 건주위의 전쟁이 발발하고 거기에 명에 요청을 받은 조선도 참전한 사이 주인공의 지시에 의해 황성평에 있는 비석을 조사해 비문을 탁본하고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동안 금나라 시대 것으로 알려져 왔던 비석이 사실은 고구려 광개토대왕릉비였고 황성평이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 일대라는 것이 밝혀진다. 이를 계기로 조정에서 그 동안 알려진 전국의 비석들을 재 조사해 분석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금석문학이 일찍 대두될 조짐을 보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